전세보증금 공적관리 추진, 임대인 이탈로 월세화 가속될까

정부가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공적기구가 직접 관리하는 안심신탁사업을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의 추진 과제로 공식 제시했다. 세입자가 낸 전세보증금을 전월세안정화기구가 맡아 운용하고, 임대인에게는 그 운용 수익을 매월 지급하는 구조다. 전세사기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는 분명하지만, 발표 직후부터 시장에서는 전세 공급이 줄고 전세 월세화가 오히려 빨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 제도가 지금 다시 수면 위로 오른 건 최근 몇 년간 전세사기 피해가 급증한 탓이다. 국토연구원이 2023년 발간한 ‘전세 레버리지 리스크 추정과 정책 대응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도 “신탁기관이 계약과 운용을 수행하고 소유자는 신탁기관으로부터 운용수익 및 임대기간에 비례한 세제혜택을 받는 방식의 임대차 신탁제도”를 제안한 바 있다. 정부는 올해 초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도 같은 내용을 담았지만, 임대인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현실 앞에 제도화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번 하반기 전략에서 다시 꺼내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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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을 ‘대신 맡아준다’는 게 어떤 뜻인가

구조 자체는 간단하다. 지금은 세입자가 집주인 계좌로 보증금을 직접 송금하면, 집주인이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임차인은 알 방법이 없다. 대출 상환에 쓰기도 하고, 새 집을 사는 데 유용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세입자 보증금으로 돌려막기도 했다. 바로 이 구조가 전세사기의 토양이었다.

안심신탁사업은 이 돈의 경로를 바꾼다. 세입자가 낸 보증금이 집주인 계좌가 아니라 공적기구인 전월세안정화기구로 직행하고, 집주인은 기구가 그 돈을 굴려 얻은 수익만 매달 받는 방식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목돈 대신 월수입을 받는 셈이니, 어떻게 보면 반강제 월세 전환과 구조가 닮아 있다. 솔직히 이 대목에서 ‘집주인이 왜 이 제도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겠나’라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정부는 적용 대상을 기존 등록임대사업자에 한정하지 않고 일반 임대인까지 넓힐 것으로 예상된다고 업계는 전한다. 다만 참고자료 기준으로 적용 범위·보증금 관리 비율 같은 핵심 세부 사항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임대인이 이탈하면 전세 월세화는 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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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가장 걱정하는 지점은 임대인의 이탈이다.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온 방식을 살펴보면 이 우려가 왜 나오는지 이해가 쉽다. 전세보증금은 단순한 보관금이 아니라 집주인에게는 무이자 레버리지였다. 대출 이자를 내지 않고도 목돈을 조달해 추가 주택을 매입하거나 기존 대출을 상환하는 데 쓸 수 있었다. 공적기구가 이 돈을 관리하게 되면 집주인이 직접 운용할 수 있는 자금 자체가 사라진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신탁 운용 비용이나 수수료, 세금 등을 고려하면 임대인이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은 기대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며 “임대인이 전세를 유지할 만큼의 유인이 충분할지 의문이며 결국 전세의 월세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운용 수익이 월세 임대 수익보다 낮다면, 집주인으로서는 그냥 월세로 돌리는 게 합리적 선택이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구조에서 임대인이 제도에 남아 있을 유인은 결국 하나다. 기구의 예치금 운용 수익률이 시중 월세 수익률보다 충분히 높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 조건이 현실에서 충족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업계는 지적한다. 금리 환경, 운용 규모, 수수료 구조가 모두 맞아 떨어져야 하는 조건인데, 세 가지가 동시에 맞아 떨어지는 시나리오를 설계하기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적용 범위와 보증금 비율, 제도의 성패를 가를 변수

제도 설계 과정에서 남아 있는 쟁점도 적지 않다. 우선 어떤 주택에 적용하느냐는 문제다.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된 빌라·오피스텔·다가구주택을 중심으로 제한 적용하면 형평성 논란이 생기고, 아파트까지 포함해 전면 확대하면 시장 충격이 훨씬 커진다. 어느 쪽을 택해도 반론이 따라오는 구조다.

보증금을 얼마나 신탁 대상으로 묶을 것인지도 핵심 변수다. 전액을 기구에 맡기면 임차인 보호 효과는 극대화되지만 임대인의 자금 운용 여지가 완전히 사라진다. 일정 비율만 관리하면 레버리지 남용을 막는 효과가 반감된다. 어중간한 설계는 제도 취지도, 시장 참여도 모두 잡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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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 차례 제도화에 실패한 전력이 있는 만큼, 이번에도 임대인 참여 유인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제도의 명운을 가를 가능성이 높다. 세제 혜택이나 인센티브 없이 의무 참여로 밀어붙이면 임대인들이 전세 매물을 거두고 월세로 전환하는 속도만 앞당길 수 있다.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려는 제도가 정작 임차인이 선택할 수 있는 전세 물건 수를 줄이는 역설, 이 아이러니를 풀어내는 것이 이번 제도 설계의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 참고자료

이 글은 공개된 보도자료와 연구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정보 제공 목적의 콘텐츠이며, 부동산 투자·임대차 계약에 관한 법률 자문이나 재무 조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개별 임대차 상황에 따라 적용 결과가 다를 수 있으므로 계약 전 전문가 확인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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